기록상자/머릿속 드래프트

2016년도, 비트코인 실화 하나 얘기해볼까

시작하는모든것들 2025. 4. 23. 11:40

 

오늘 구글 트렌드에 비트코인이 올라온 걸 보고  
예전에 있었던 일이 하나 떠올랐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2016년 초쯤,

그때 난 잠깐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러 사람들 만나보면 재밌겠다 싶어서 해본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사람 구경 많이 했던 시기였다.

그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당시 21살이었고, 첫인상부터 확실히 특이했다.
예전에 일했던 직원이었는데,
그때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사장님께 며칠 청소라도 할 테니
잠깐 지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더라.
그렇게 나랑 며칠 같이 지내게 됐다.


대학은 입학하자마자 돈 아깝다고 바로 그만뒀다 하고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항상 같은 옷, 긴장발 머리, 캐리어 끌고 다니는 모습.  
외국에서 살아본 적은 없다고 했지만  
영어, 일본어, 라틴어까지 여러 언어를 꽤 능숙하게 썼다.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여러 나라 노래를 듣다 보니  
그게 자연스럽게 언어 공부가 됐다고 했다.  
듣는 입장에선 ‘이게 되나?’ 싶었지만,  
말하는 걸 들어보면 진짜 능력자 같긴 했다.

술을 참 좋아했다.  
일 끝나면 맥주 한 캔씩 들고 앉아서  
밤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그 친구는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생각도 많은 사람이었다.

자기는 언젠가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전 세계 아마추어 예술가나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사람들이 비딩해서 사고팔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거였다.  
이베이나 아마존 같은 시스템이랑 비슷하다고 설명하던데,  
그때 나는 솔직히 그런 쪽엔 관심도 없었고  
그냥 좀 특이하네, 신기하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 얘기 하다가 어느 날은  
갑자기 비트코인이란 걸 아냐고 묻더라.  
처음 듣는 단어였다. 모른다고 하니까  
디지털 화폐고, 인터넷에서 쓰는 돈인데  
블록체인 기술이라는 게 있어서  
누구든지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고,  
투명하고 안전한 구조라고 설명해 줬다.

근데 그 당시엔 도무지 와닿지가 않았다.  
그런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더 솔직히 말하면 관심도 없었다.  
그 친구 말도 대충 흘려들었고.

근데 본인은 지금까지 모은 돈 전부를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도 “지금 버는 월급 전부 넣어봐, 나중에 달라질 거야”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했다.

당연히 안 넣었다.  
며칠 알던 친구 말 듣고 그런 모험을 할 만큼  
그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게하 일을 그만두고  
자연스럽게 그 친구랑도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몇 년 지나서,  
2018년쯤에 예전 일하던 게하 근처에 들렀다가  
그때 외국인 직원이 여전히 일하고 있는 걸 보고  
잠깐 인사 나눴는데, 갑자기 그 친구 얘기를 꺼냈다.

기억하냐고 묻길래 기억난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비트코인으로 큰돈 벌고  
그 자금으로 네덜란드에 금융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는 거다.  
지금은 거기서 완전히 자리 잡고 살고 있다고.

그 얘기를 듣는데 괜히 좀 묘했다.
그때 나는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자 정답이라고 믿고 살던 시기였고,
그 친구는 그런 틀 밖에서
그냥 자기가 생각한 방향대로 움직이던 사람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사는 삶도 나쁘지 않았겠단 생각이 든다.  
그때는 “나랑은 다른 사람이다” 하고  
연락할 생각조차 안 했지만  
지금 같았으면, 그냥 한번 연락은 해봤을 것 같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괜히 그 친구 생각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