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비가 온다. 근데 하필이면 빨간 날이다.
기분이 괜히 묘하다. 평일엔 비가 와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우산 들고나가든 말든, 어차피 일해야 하니까 신경 꺼지는데 쉴 때 비가 오면 그게 뭔가 크게
느껴진다. 괜히 하늘이 나 쉬는 걸 방해하는 기분.
기분 탓이겠지 싶다가도, 매번 이렇다.
진짜 비는 꼭 휴일에만 오는 것 같다.
머피의 법칙인가.
아니면 내가 주말 날씨에만 예민한 걸까.
평일에도 이렇게 비가 왔겠지만,
그땐 느낄 여유가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근데 또 이상한 게, 이렇게 흐린 날은 뭔가 쓰고 싶어진다. 기분은 축축 처지는데, 몸은 조용히 뭘 하고 있음.
창문을 열면 눅눅한 냄새가 들어온다.
빨래는 안 마르겠고, 커피는 또 괜히 타게 된다.
하는 일은 없는데 자꾸 앉게 된다.
그냥 그런 날이다. 뭔가 망한 것도 아닌데,
아 또 비 오네 짜증!! 같은 말로 괜히 기분 탓을 하고 싶어지는 날. 어쩌면 그냥 내가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하늘 탓, 날씨 탓하면서 내 기분 설명할 핑곗거리 하나 만들어두는 거. 가만히 앉아 비 내리는 거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든다. 쉴 땐 제대로 쉬고 싶은데,
날씨도 사람처럼 타이밍 안 맞을 때가 많다. 그게 좀 짜증 난다.
가끔은 비 오는 날이 좋았던 적도 있었다.
어렸을 때 얘기다.
밖에 나가서 그냥 비 맞으면서 논 기억이 있다.
처음엔 젖을까 봐 조심조심했었다.
신발 젖을까 봐 피하고, 옷 젖을까 봐 움츠리고.
근데 어느 순간 다 젖고 나니까 오히려 편해졌다.
싹 다 젖어버리면 그냥 다 맞으면서 노는 게 더 재밌었다.
그때는 그런 게 웃기게도 해방감 같았다.
어차피 젖은 거니까, 더 이상 조심할 필요도 없고
그냥 마음대로 뛰고, 밟고, 뛸 수 있었던 기억.
그런 날은 비 오는 날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날씨 앱엔 흐림이라더니,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오늘 하려던 계획은 다 무산.
등산도, 피크닉도, 자전거도 다 취소.
실내에 갇혀서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야 한다.
물론 영화나 책도 있긴 한데, 그건 비 안 오는 날에도 할 수 있는 거니까.
특별하게 쉬고 싶었던 날에 비가 오면
뭔가 선택권을 뺏긴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비 오는 날은 시간이 더 빨리 간다.
평소에도 휴일은 짧은데, 비 오는 휴일은 더 짧다.
빗소리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하루가 끝난다.
그 찝찝함이란.
그래도 생각해 보면, 비 오는 날이 주는 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글 쓰는 시간,
아무 생각 없이 커피 마시는 여유,
평소엔 잘 못 느끼는 감각들.
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젖은 아스팔트 냄새,
어쩌면 비는 꼬장 부리는 걸지도 모른다.
잠깐 좀 생각 좀 하면서 살라고.
그래도 내일은 맑았으면 좋겠다.
오늘 못한 건 내일 하고 싶다.
근데 날씨 앱 보니까 또 비란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냥 받아들여야지.
비 오는 휴일의 리듬대로 살기.
어쩌면 이런 날은,
예상도, 계획도 없이 찾아오는
또 다른 방식의 휴식인지도 모른다.
이제 커피 한 잔 더 내려야겠다.
비 오는 날엔 커피가 더 맛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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